게임 이야기/게임 리뷰







바이오하자드, 혹은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는 현재의 캡콤을 만들어준 일등 공신입니다. B급 좀비물을 지향하여 만든 1편은 양옥이라는 고색창연하며 기괴한 장소와 이제는 흔해빠진 좀비라는 개념을 접목시켜 그때 당시로서는 신선했던 영화적 감수성에 입각한 호러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바이오하자드 4의 혁신과 바이오하자드 5 이후로, 수많은 바하 팬들은 바하 시리즈의 정체성에 대해서 많은 걱정과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미카미 신지가 4편으로 시리즈의 새로운 스탠다드를 제시한데 반해서 5편은 그저 4편의 반복 재생산에 불과하며, 웨스커라는 매력적인 소재를 중2병으로 망쳐버렸으며, 호러라는 시리즈의 본질은 규모와 액션성에 의해서 흐려져버렸죠. 심지어 4편 당시에도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라 취급받았던 '무빙샷의 부재' 역시 주요한 비판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리고 5편이 나올 당시, 호러 액션의 걸작 데드 스페이스가 나와버리는 바람에 5편은 비참하리만치 무시당했죠.(물론 판매량은 대단했지만...) 하지만, 제가 데드 스페이스 2 리뷰에서도 지적하였듯이, 공포란 장르는 결과적으로 대중에게 먹히는 장르가 될 수 없습니다. 데드 스페이스 1편에서 2편으로의 변화를 살펴보더라도,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호러 장르 역시 여타 블록버스터에서 볼 수 있는 규모를 확보하고 적당하게 공포를 거세해야합니다. 결국 이것이 호러 게임이 도달할 수 밖에 없는 숙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빌레이션은 이런 호러 게임들의 숙명을 교묘하게 피합니다. 단순하게 보면 4편에 베이스를 두고 있는 5편에 무빙샷을 추가한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지만, 세세하게 뜯어보면 리빌레이션은 아주 기묘한 컨셉 위에서 성공적으로 과거와 현재의 바이오하자드를 섞어놓은 게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이오하자드 1편의 성공은 양옥이라는 기묘한 장소가 중요하게 작용했습니다. 음침하면서 고색창연한 저택과 곳곳에 숨겨져있는 비밀들 등등 플레이어에게 공포를 주는 동시에 그 속의 비밀을 파해치고 싶은 욕구가 들게 만드는 공간이었습니다. 리벨레이션은 이러한 1편의 컨셉을 이어받아서 '괴물들이 들끓고 비밀을 간직한체 유령선이 된 호화 유람선'이라는 컨셉을 보여줍니다. '유령선'이라는 컨셉은 데드 스페이스와 유사하며, 데드 스페이스 같이 유람선 내부의 파트마다 각기 다른 분위기와 컨셉을 보여주기는 합니다. 하지만 리빌레이션의 스테이지나 게임 구조는 바이오하자드 1편이나 데드 스페이스와는 다릅니다. 리빌레이션은 기본적으로 게이머들에게 깊은 탐색보다는 빠르고 급박한 진행을 할 것을 요구하며, 실제 무언가를 발견하고 퍼즐들이 다양하게 숨겨진 공간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는 휴대용이라는 기기 자체의 한계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게임 자체가 길거리에서 20-30분 정도로 가볍게 즐길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재밌는 점은 각각 미션들이 하나당 플래이 시간이 20-30분 정도라는 점입니다.

바이오하자드 5 제작진은 무빙샷은 바이오하자드 시리즈가 갖는 호러의 본질을 해친다고 변명했지만, 데드 스페이스의 등장으로 이는 아주 쉽게 반박되었죠. 하지만 재밌는 점은 무빙샷을 집어넣은 리빌레이션은 호러 장르 따위는 아득하게 벗어나버린 본가 넘버링 시리즈에 비해서 더 호러 장르에 충실하다는 것입니다. 본가가 제시한 딜레마에 대해서 리빌레이션은 무빙샷을 집어넣되, 그 움직임을 매우 느릿하게 재현했습니다. 동시에 본작의 적들인 오즈들의 움직임 역시 대단히 느릿하게 묘사하였구요. 덕분에 리빌레이션은 상당히 느릿한 템포를 보입니다.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느린 적 덕분에 게임 진행이 편해졌지만, 동시에 무빙 역시 느려졌기 때문에 상당히 신경쓰면서 움직여야 합니다. 이로써 적과 나 사이의 기묘한 긴장감을 부여합니다. 또한 공간적인 배경 역시 호러 분위기를 만드는데 일조하는데, 폐쇄공포증마저도 느껴질정도로 꽉막힌 배경에 두사람 이상이 나란히 설 수 없는 통로나 방에서 거의 대부분 보내는 게임은 어쩔 수 없이 지근거리에서 튀어나오는 괴물들을 상대로 싸울 수 밖에 없는 환경과 긴장감이 흐르는 분위기를 만듭니다.

거기에 게임 내의 호러연출들은 구태의연하지만, 극히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미잘, 멍게, 해삼, 개불, 갯강구(.....) 등으로부터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따온 괴물들이 스멀스멀 환풍구에서 기어나오는 장면은 아무리봐도 등골이 섬찟해지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여기저기 스토리텔링을 위한 일지나 문서들을 통해 호러 분위기를 만들고 있구요. 사실, 가장 기본적인 호러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유령선이 된 유람선, 퀸 제노비아 호 그 자체입니다. 캡콤과 제작진들이 이 기괴한 장소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비주얼적으로 상당한 공을 들였다는 것을 게임을 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무빙샷이 있는 호러 서바이벌 액션 게임인 데드 스페이스에 비교하자면 바이오하자드 리빌레이션이 지향하는 바는 완전히 다릅니다. 데드 스페이스는 전략적 사지절단과 살아남기 위한 빠른 움직임을 보여주는 액션 게임의 변용이라면, 리빌레이션은 그보다는 좀더 소규모에 느릿한 미니게임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찌보면 데드 스페이스가 더 좋은것처럼 보이지만, 휴대용-거치형 사이의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의 존재를 상기하자면 리빌레이션의 컨셉은 타당해보입니다.

휴대기기용 게임이라는 숙명 때문에 한 미션 단위가 짧고, 본편 내용만 다 합쳐서 7~8시간 밖에 안되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만, 캡콤은 이를 절묘하게 보완합니다. 본편의 맵과 스테이지 구조를 이용한 러쉬 모드인 레이드 모드가 바로 그것입니다. 게임 자체도 한 스테이지에 짧고 빠르게 진행되며, 레벨 개념과 장비의 강화 개념등을 통해서 깊게 파고들 수 있는 요소를 제공합니다. 실제 이걸 본편으로 치는 사람도 꽤 있으며, 이로써 게임 분량이 40~50시간까지 늘어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게임의 그래픽이나 음향은 거치형 게임기에 살짝 모자른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주얼적인 측면이나 게임의 묘사, 연출 등은 5편 베이스이며 화면만 축소되었을 뿐인 5편이기는 합니다만 문제는 규모 측면에서는 5편 보다는 훨씬 부족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군데군데 프레임드랍이 있는 편이기도 하구요. 에리어에서 에리어로 넘어가는 부분의 프레임드랍이 상당하다고 할 수 있으나, 그건 에리어 간 연결 부분에서만 그렇습니다. 전반적으로는 프레임 자체는 안정적인 편. 사실 휴대기기인데다가, 캡콤의 실질적인 3DS 데뷔작이라 할 수 있는(물론 머셔너리즈도 있지만...) 게임이기에 앞으로 가능성은 더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3D 효과도 좋은 편이기도 하구요(문제는 항시 3D 온! 상태라 베터리 소모속도가-_-)

사실 리빌레이션의 가장 큰 문제점은 게임 자체라기 보다는 게임 조작 체계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존 게임 패드들이 듀얼 아날로그 스틱을 이용해서 왼쪽 스틱은 움직임을, 오른쪽 스틱은 시야 조정을 하는데 3DS 자체가 스틱이 하나밖에 없기에 기존 조작 체계에 있어 문제가 발생합니다. 웃기게도, 리빌레이션의 가장 큰 특징인 무빙샷은 뒤집어서 이야기하면 스틱을 하나 추가해주는 확장 슬라이드 패드가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만 오천원 정도 들여서 슬라이드패드를 하나 사야하는데...이게 솔직히 이야기해서 가격이 비싸기 보다는 그냥 생겨 쳐먹은게 거대한 똥덩이(.....) 같이 생겼다는게 문제입니다. 이걸 달면 거의 3DS가 휴대용 기기라고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해외 웹진의 저평가나 악평들(조작체계가 이상하다) 자체가 거의 여기서 오는게 아닌가 싶더군요.

결론적으로 바이오하자드:리빌레이션은 휴대용 기기에 걸맞는 호러 장르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1편의 컨셉으로 회귀했지만, 무빙샷등의 요소를 추가해서 그대로 시리즈에 그대로 머무르지 않은 점은 게임 제작진이 나름대로 고심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 따라 평이 극단적으로 갈리는 6편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저는 리빌레이션 제작팀이 앞으로 이런 컨셉의 작품을 또 만들어주었으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