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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배트맨 다크나이트는 영화사에 한획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훌륭한 영화였습니다. 영웅을 벗어나고 싶은 영웅과 그 발버둥, 영웅조차 감당할 수 없는 혼돈, 그리고 마지막 영웅으로서의 비극적인 숙명을 받아들이고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리는 영웅의 비장한 모습은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입고 한철 장사하는 히어로 영화의 틀을 바꿔버렸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이 간절히 원한 테제, '히어로가 필요없는 세계'는 약간의 시니컬한 관점과 비장미가 섞인 복잡 미묘한 엔딩에 의해서 부정되었죠. 3편,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그러한 명제에 대한 반대 명제입니다. 어떻게 히어로가 대체되고, 세계가 히어로 없이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죠.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전작들보다도 더욱 인간적인 배트맨을 그리고자 합니다. 2편 이후, 브루스 웨인은 8년동안 폐인처럼 살았습니다. 알프레드는 떠나고, 웨인 기업은 적들 손에 넘어가며, 베인에게 허리는 부러지고 서아프리카 어딘지도 모르는 구덩이 감옥에 갇혀서 라이브로 고담시가 망하는 장면을 TV로 보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루스 웨인은 배트맨으로 다시 한번끔 일어납니다(Rise) 더이상 잃을 게 없기에 죽어도 좋다는 막무가내식으로 싸웠지만,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살아남는다 라는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일어난 배트맨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물론 표면적으로) 고담 시를 다시 지켜냅니다. 그리고, 그가 바란대로 그는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정의를 불러일으키는 상징으로, 영원히 남게 되죠.


영화는 배트맨 보다, 배트맨 주변 인물들이 고담시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 노력하는 장면에 초점을 맞춥니다. 사실, 이번 라이즈는 배트맨이라는 존재에 대한 의미의 고찰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비긴즈에서는 범죄자에게 공포를 주는 상징으로, 다크나이트에서는 영웅을 옭아메는 동시에 거역할 수 없는 비장미를 부여하는 장치로, 라이즈에서는 모든 이들의 사람의 마음속에 살아숨쉬는 정의의 상징으로 말이죠. 상당히 일반론적이고 상식적인 선에서의 배트맨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사실 여기서 비틀기에 들어가면 무한히 비틀 수 밖에 없는 어려운 질문이기 때문에 놀란 감독은 상당히 안전한 길을 선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히어로가 필요없는 히어로 영화'라는 점에서, 영화는 '도대체 그러면 그것이 어떻게 히어로 영화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역설적인 지점에 도달합니다. 영화는 그렇기에 영화내의 모든 장치들을 배트맨의 '과거 청산'에 초점을 맞춥니다. 사실, 영화 대부분의 장치나 플룻은 배트맨의 과거나 오판, 실수로부터 비롯됩니다. 브루스 웨인, 배트맨이 방심하고 있었기에 텀블러 같은 배트맨의 주요한 장비들이 빼았겼으며, 베인과 탈리아 알굴이라는 메인 빌런은 비긴즈부터 비롯된 배트맨의 업보입니다. 결국 히어로가 없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히어로 스스로의 과거 자체를 청산해야 하는거죠. 


여기까지만 적어놓고 본다면, 상당히 괜찮은 영화입니다. 솔직히 다크나이트에는 못 미치지만, 나름대로 포인트도 있고 재미도 있어요. 그러나 문제는 전체 플룻이나 장치에서 오는 것이 아닌, 아주 사소하고 미묘한 부분에서 비롯됩니다. 한마디로 부분부분을 놓고 보면 훌륭하나, 그 부분을 연결시키는 연결고리가 감히 허접스럽다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사실, 사소한 빈틈들이 자꾸 쌓이고 쌓이다 보니, 결국 마지막 영화 끝나기 15분 전 탈리아 알 굴이 등장하는 시점에서 뻥하고 터져버립니다.


첫번째로, 왜 다크나이트 이후 8년 동안 브루스 웨인은 배트맨으로서의 정체성을 갖다 버린걸까요? 그렇게 비장한 엔딩을 거쳤는데, 결과적으로 라이즈 시작부터 나온 결과물은 히키코모리 였습니다. 뭐, 이것도 어느정도 봐줄만 해요. 사실 놀란의 배트맨은 영웅과 인간의 그 중간점에서 고뇌하는 백만장자의 이미지가 강하니까요. 그건 그렇다고 칩시다. 브루스 웨인이 8년의 공백을 벗어던지고 다시 배트맨이 되기를 선언할 때, 뭐랄까 미묘한 어중간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알프레드가 지적했듯이 베인이라는 적을 살짝 깔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죠. 결국 베인한테 영혼까지 털려버리고 허리가 부러지는데다가 자기 무기고까지 털립니다. 하지만 베인이라는 적이 워낙이 강적이니, 이렇게 개털리는 모습이 그다지 어색하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8년동안 놀았으니 그럴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죠.


두번째 미묘함은 바로 감옥 시퀸스와 전체 플룻 사이의 관계입니다. 감옥 시퀸스에서 브루스 웨인은 다시금 영웅으로 일어나기 위한(Rise) 죽음-재생-부활의 과정을 거칩니다. 그런데, 영웅이 필요 없는 세계라는 명제와 영웅이 고난을 거쳐 다시 영웅으로 부활하는 것, 이 두가지의 명제 사이에서 플룻은 미묘한 마찰을 일으킵니다. 차라리 배트맨이 없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이 더 인상적이었고, 전체 이야기의 핵심축을 형성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놀란은 영웅이 필요없는 영웅영화에서 감옥 시퀸스와 부활의 장면은 너무 쓸데 없이 길고 중요하게 잡습니다. 차라리 베인이 만들어낸 '고담 시민들에 의한' 고담시라는 상당히 의미있고 심도있는 상황을 연출하고, 아무리 일반인들이 정의감과 희생으로 막을 수 없는 임계점의 상황에서 배트맨이라는 영웅이 마지막으로 일어나 고담을 지킨다고 한다면 그 나름대로 감동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 부분에서 비율을 이상하게 배트맨쪽에 무게를 실으면서 '영웅이 필요없는 세계에서 영웅 뺀 나머지 인간들은 쩌리임'이라는 이상한 뉘앙스를 만들어냅니다. 그것이 감독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요.


마지막 미묘함은 바로 탈리아 알 굴의 등장입니다. 사실 라스 알굴의 '자식'이라는 떡밥은 탈리아 알굴의 등장을 시사하고는 있었으나, 사실 영화 내에서 사전 지식없이 본다면 옆구리 찔린 배트맨 마냥 충격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베인이라는 악역을 지적이고 사악한 아나키스트에서 지고지순한 순정 로리콘(.....)으로 만들어버리며, 라스 알굴은 간지 악역에서 순식간에 가면 쓴 변태에게 딸을 뺏길수 없다! 고 외치는 딸바보가 됩니다. 탈리아 알굴이 그만큼의 가치가 있었냐고 물으면요? 10분만에 교각에서 떨어진 트럭에서 충격을 받고 어이없게 죽습니다. 웃긴건, 고든 청장은 뒤에서 중성자 폭탄이랑 구르고 있었는데도 멀쩡하게 기어나오는데 말이죠.


사실 베인이라는 악역은 조커 급으로 인상적인 악역입니다. 배트맨이 대처하지 못하는 악이라는 의미에서의 조커와는 달리, 배트맨과 정면에서 맞붙어도 배트맨을 압도할 수 있는 악역이라는 측면에서 베인은 인상적인 악역입니다. 게다가, 마치 시민들에게 권력을 모두 이양한것 마냥 속이고는 시민들 스스로가 혼돈과 악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상황을 교묘하게 연출하는 지능적인 악역이기도 하구요. 조커가 그 기상천외함에서 배트맨을 압도하고 있다면, 베인은 지적이고 인내심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톰 하디의 인상적인 목소리 연기도 좋았구요. 그런데 이 모든게 영화 끝나기 15분 전에 그의 지적인 아나키스트적인 이미지는 단지 탈리아 알굴을 향한 지고지순한 키잡+로리콘+페도필리아 수준으로 격하되며, 2분 정도 뒤에 캣우먼의 바이크 캐논 공격(사실 옆구리를 내주고 캐논으로 공격하는 전략이었어!) 어이없게 리타이어 당해버립니다. 


이 순간부터 영화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합니다. 베인이라는 악역이 어떤 큰 목적이나 깊이를 알 수 없는 악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배트맨이 죽인 라스 알굴이라는 거대한 업보(라 쓰고 거대합 삽질, 또는 빅똥으로 읽는다)때문이라는 것은 영화내에서 고담 시민들이 겪었던 고초가 한순간에 배트맨이 쌓은 업보(라 쓰고 싼 똥이라 읽는다)에 쓸데없이 다같이 고생하는 어이없는 상황으로 격하됩니다. 게다가 고담 시민들이 겪은 고초에 대해서, 그리고 베인이 만들어낸 아나키즘이 지배하는 고담에 대한 묘사가 대단히 적기에 고담시민들의 겪었던 고통은 사실 베인의 연정에 의한 것이라는 이상한 상황에 봉착하죠. 사실, 베인이 어둠의 리그에서 파문당했다는 설정만 그대로 유지하고 라스 알굴과 탈리아 알굴만 없었어도 영화의 평가는 이정도로 까지 떨어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탈리아 알굴의 등장과 함께, 영화는 배트맨이 스스로 싼 똥을 치우는 결자해지의 영화로 격하됩니다. 결국 자기 업보를 치우기 위해서 배트맨이 핵과 함께 자폭을 했는데,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동상까지 세워주고 정의의 아이콘으로서 영원히 상징화합니다.


솔직히 영화 끝나기 15분전까지 저도 나름대로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놀란은 이상한 부분에서 완급조절을 잘못한데다가, 탈리아 알굴의 등장으로 이 모든 영화의 장점을 죄다 씹어먹어버려요. 만약 놀란이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고 시리즈를 끝내려 했었다면, 탈리아 알굴이나 베인을 동시에 등장시키지만 않았더라면 이정도로 망했다는 느낌은 안들었을 겁니다. 결국 욕심이 영화를 망쳤다고 밖에 말 못하겠네요.



 덧.뭐랄까, 점점 시리즈 뒤로 가면 갈수록 배트맨의 정체를 몰라주는

고담시민들의 친절함에 눈물이 나려합니다(.....)



덧.아무리 빈말로도 전작에 비해서 액션 시퀸스가 좋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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