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우리는 사람이 총에 맞아서 구멍 뚫리거나 잘려나가거나 피가 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표현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뭐,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요. 물론 폭력 영화라는 분야가 처음부터 이렇게 잔인하지는 않았습니다. 각 시대별로 폭력성의 단계를 한층 고조시키거나 인상적인 결과물을 남긴 일종의 문턱(?)같은 영화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실제 총을 맞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 더티 해리라던가, 정교한 고문/가학적 장치를 통해 고통을 엔터테인먼트화 시킨 쏘우 시리즈, 인정하기는 싫지만 사실적인 폭력과 이해불가능한 목적을 결합시켜 인간을 파멸시키는 것을 보여준 마터스 등등이 대표적이죠. 샘 패킨파 감독의 와일드 번치는 이런 영화들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영화입니다. 아마 이렇게 독기가 어린 작품은 영화 역사상 손에 꼽을 정도일 겁니다.

기본적으로 와일드 번치는 서부극의 끝자락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자동차가 등장하고, 자동 권총에, 기관총 등등 서부시대가 끝나는 전환기의 마지막 무장강도들의 이야기입니다. 극중 주인공인 파이크가 이야기하죠. 더이상 (강도)기술이 늘지 않고 있어. 이미 파이크와 그들은 절정의 시기를 지났죠. 이제는 내려갈 때입니다. 그렇기에 파이크와 그의 일당들은 마지막 큰 한탕을 준비합니다. 하지만 그 마지막이 문자의미 그대로의 '마지막'이 되어버리지만요.

와일드 번치란 영화는 그 내리막을 아주 독기어리게 다루고 있습니다. 사실, 아무리 허무주의적인 냄새를 강하게 풍겼던 서부영화 장르조차도 와일드 번치가 보여준 이 독기어린 세계관에 비할 바가 못됩니다. 와일드 번치의 세계는 선과 악은 존재하지 않으며, 거기에 덧붙여서 '미'나 '의리', '미덕'이라는 개념조차 없는 세계입니다. 철저하게 '인과율'과 허무주의에 의해서 지배되는 세계죠. 초반 기병대 복장으로 은행을 턴 후에 은행을 빠져나가기 위해서 무고한 마을 주민 절반 이상을 총격전에 휩싸이게 한 파이크 일당은 결국 자신의 동료였던 엔젤을 구하기 위해서 200명이나 되는 마파치 반군들과 싸우다 장렬하게 죽습니다. 이 첫번째 총격전과 마지막 총격전이 수미쌍관의 구조(군인의 복장으로 총질을 한 뒤에, 군인들에게 둘러싸여 숨을 거두다)를 이루고 있죠. 게다가 어처구니 없게 위대한 악당 파이크는 어린아이의 총에 맞아 숨을 거둡니다. 또한 엔젤은 자신을 배신했던 연인을 죽이고, 그 연인의 어머니에 의해서 고발당하고 파이크 일당을 쫒던 조무래기들은 결국 원하던 파이크의 시체를 손에 넣지만 결국 그에 의해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죠. 한마디로 처음부터 끝까지 허무주의와 인과의 법칙으로 점철된 썩은 맛이 줄줄 흐르는 영화라는 겁니다.

이 극단적일 정도로 허무하고 잔혹한 세계에서 샘 패킨파가 드러내고자 했던 것은 '폭력으로 흥한 자들의 최후'가 아닐까 싶습니다. 창녀와 한판하고 술병을 비운 파이크와 그의 일당들은 분명 자신의 몫을 챙겨서 도망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200명이나 되는 군인들을 향해서 총질을 하고 장렬하게 모두 죽어버렸죠.(물론 그 과정에서 200명의 거의 대부분을 장렬하게 죽여버렸지만) 파이크가 동료들과 함께 엔젤을 구하기 위해서 총을 들고 나란히 반군의 수장 앞으로 행진하는(그리고 그와 대비되게 그들을 미친 놈 보듯이 멍하게 바라보는 반군들) 장면은 영화가 보여주고자 한 것들을 그대로 압축해서 보여줍니다. 폭력으로 흥한 자, 폭력으로 망한다. 라는 것을요.

와일드 번치란 영화가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잔인한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 당시 기준으로 엄청나게 잔인했지만요. 오히려 샘 패킨파 감독과 와일드 번치가 영화사적으로 갖는 의미는 폭력의 정수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현재의 액션영화나 폭력 영화와 비교할 수 없는 경지를 달성했다고 할 수 있는 겁니다.


덧.다 쓰고 보니까, 음....마음에 안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