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용서받지 못한 자는 여러가지 의미에서 존경받을만한 작품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배우가 어떤 길을 걸어왔고, 어떻게 감독이 되었는지를 생각하면 말이죠.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60~70년대를 풍미했던 더티 해리와 전통적인 서부극의 변종인 스파게티 웨스턴의 전설적인 아이콘이었죠. 스파게티 웨스턴은 전통적인 서부극과 대척점입니다. 흔히 존 웨인과 그의 대표작 하이눈에서 등장하는 정의로운 보안관, 영웅적인 무법자 등의 이미지와는 대조적으로 스파게티 웨스턴은 어딘가 썩어 빠져버린 인간군상이 서로 총질하는 것이 주요한 내용이었고,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바로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사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을 하기 전까지의 커리어는 거의 대부분 '무법자형 히어로'에 가까웠기 때문에 그가 감독을 하자 많은 사람들이 비웃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는 대단히 아이러니한데 지금 현시점에서 우리가 기억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더이상 황야의 무법자가 아닌 위대한 감독입니다. 사실, 제가 제 자신을 열렬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영화의 팬으로 자처하는 바이지만, 저 역시도 88년작 버드 이후의 '감독' 작품들만을 보았을 뿐 60-70년대의 무법자 류의 영화는 하나도 보지 못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보았을 때,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인생에서 위대한 배우에서 위대한 감독으로 변모하는 극적인 반전의 계기는 '용서받지 못한 자'(Unforgiven, 1993)라고 생각합니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작품의 핵심적인 특징들이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동시에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여태까지 무법자 전문 배우로서 걸어왔던 자신의 영화 인생의 한 부분을 스스로 끝내는 상징적인 작품이니까요.

영화는 윌리엄 머니가 자신의 아내를 묻는 장면을 배경으로 그가 어떻게 정착하였는지에 대한 자막을 짤막하게 올리면서 시작합니다. 사실, 일반적인 영화라면 그 지점이 바로 엔딩 지점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모두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답니다...? 하지만 용서받지 못한 자는 바로 그 지점에서 물음표를 던지면서 시작하죠. 그리고 동시에 영화는 서부 영화에 전반적으로 깔린 클리셰들을 담담하면서 현실적인 시선으로 재조명하고 이를 영화 내에 담아냅니다.

영화 내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한 윌리엄 머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분신 그 자체입니다. 젊었을 때는 악명 높은 무법자였으며, 수틀리면 사람 죽이고, 물보다 술을 더 마시고, 애도 어른이고 할 것없이 다 쏴죽이는 냉혹한 살인마였습니다. 60-70년대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에 나올법한 전형적인 무법자 케릭터, 즉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했던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전형이었죠. 하지만 이제 그는 나이가 들어서 가정을 꾸리고, 술도 끊고, 홀아비의 몸으로 자식들과 살아남기 위해서 병걸린 돼지들하고 돼지 우리에서 뒹구는 전형적인 농부가 되었죠. 그가 가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현상금을 쫒아 집을 떠난 뒤에도, 그는 영화의 절정 부분 직전까지 계속해서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합니다. 오한에 몸을 떨면서도 몸을 데우기 위한 술을 한방울도 안마시거나, 현상금을 건 창녀들의 공짜 서비스를 받지 않는 점 등에서 여실히 드러나죠.

이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자아성찰이자 고백입니다. 젊었을 때 자신의 페르소나 그 자체였던 스파게티 웨스턴과 그 케릭터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폭력은 결코 아름답거나 멋있을 수 없다-을 지속적으로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하는 윌리엄 머니를 통해서 드러내는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자아성찰은 비단 윌리엄 머니 뿐만이 아니라 영화 전반에 깔려있습니다. 그 단적인 예로 영화 내에서 나오는 총격전 장면에 대한 묘사가 있죠.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는 구질구질한 의미에서 총격전을 '사실적'으로 묘사합니다. 배에 총을 맞고 죽어가면서 울부짖는 사람,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다 총을 맞아 죽는 사람 등등 영화에서는 총격전에 대한 묘사에 대해서 구질구질하게 묘사합니다. 오히려 총격전의 장면보다 영화가 더 비중을 두는 부분은 바로 사람을 죽인 뒤의 살인자들의 심리입니다. 윌리엄 머니가 네드와 키드와 함께 첫번째 카우보이를 죽일 때, 카우보이가 죽어가면서 울부짖는 모습, 동료들이 머니 일행을 욕하면서 저주하는 모습, 그리고 자신이 쏜 카우보이를 보는 윌리엄과 옆에서 촐랑거리는 키드, 그리고 그 장면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네드의 모습을 교차시켜가면서 '살인'이라는 폭력의 무게를 담담하게 묘사합니다. 두번째 살인이 일어나고 난 뒤, 한번도 살인을 하지 않았다면서 울먹거리는 키드의 모습에서 화려하고 쿨하게 보였던 살인을 한 사람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음을 보여주죠.

아마도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노년에 들어서 다시 생각한 서부시대의 본질이란 '멋지지도 않은 비이성적인 폭력이 지배하는 세계' 그 자체인 듯 합니다. 극중에서 이런 대화가 있습니다. 키드가 살인할 때의 기분을 묻자 윌리엄은 '잘 모르겠군, 대부분 취해있었으니까'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영화 내에서 대부분의 인물들은 살인이나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 죄책감을 갖고 고뇌하죠. 인간성 자체를 날려버려야 살인, 폭행 등의 극단적인 행위를 할 수 있고, 이러한 인간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술이나 외부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윌리엄이 자신의 친구인 네드가 아무런 죄도 없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때까지 마시지 않았던 술을 마시고 리틀 빌 일당을 처리했다는 점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또한 이 영화의 악역(?)이라 할 수 있는 리틀 빌이 마을의 치안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도 이런 부분이 드러납니다. 리틀 빌이 당시 서부시대 관점에서는 상당히 유능한(?) 보안관이긴 하지만, 동시에 그가 마을의 치안을 다루는 방식은 대단히 폭력적입니다. 이 영화의 모든 사건의 계기가 된 창녀의 얼굴에 칼질을 한 카우보이들에 대한 처분(강자-포주-편에서 일을 처리한 점)에서부터 잉글리쉬 밥과 윌리엄 머니에 대한 폭행,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무도 죽이지 않은 네드를 때려 죽였다는 점에서 이미 리틀 빌은 '정의'와는 거리가 먼 보안관입니다. 오히려 마을의 치안을 지키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폭력을 쓰고 있다는 점, 이 점에서 법을 등뒤에 놓고 있을 뿐 과거의 윌리엄 머니나 무법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그와 부보안관들 역시 마지막에 윌리엄 머니에 의해서 처단당하게 되는 것이죠.

영화의 제목인 용서받지 못한 자(Unforgiven)의 의미는 바로 여기서 옵니다. 폭력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폭력으로 무언가를 행하는 자는 그 자신을 용서할 수 없고(스스로 과거로부터 벗어나려고 지속적으로 단절을 선언하는 윌리엄 머니), 죄값을 치룰 수 밖에 없다(폭력으로 마을 평화를 지켰던 리틀 빌의 최후), 라는 것을 말이죠. 그렇기에 마지막 리틀 빌과 윌리엄 머니의 대화는 의미심장 합니다.

리틀 빌:I don't deserve this...to die like this. I was building the house. 
윌리엄 머니:Deserve got nothing to do with it. 

Deserve 자체에 '자격', '~할 자격이 있다'라는 의미가 있죠. 끝까지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했다고 생각한 리틀 빌이 자신이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고 이야기하자, 윌리엄 머니가 '자격은 아무 관계가 없다'라고 하죠. 이와같이 폭력이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그 누구도 용서받지 못한 자일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영화 자체로도 대단하지만,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서부극으로 흥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 대단하다고 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자신의 영화적 정체성이자 한계(?)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승화시켜서 예술적인 경지로 끌어올렸으니까요. 그리고 또한 이후 클린트 이스트우드 표 영화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이 영화에서 드러납니다. 느릿하고 담담한 카메라 움직임과 담백한 스토리라인, 관조적인 분위기 등등 그랜 토리노나 체인즐링 등에서도 볼 수 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만의 분위기가 여기서도 잘 드러나죠. 

결론적으로 용서받지 못한 자는 정말 대단한 영화입니다. 서부극을 좋아하든 안 좋아하든, 영화를 좋아한다면 꼭 한번정도 보셔도 좋을 작품입니다.

 


덧.과거와 끊임없는 단절을 선언하는 전직 무법자...어디서 들어본것 같지 않나요? 정답:레드 데드 리뎀션, 존 마스턴.

레데리를 하고 나서 영화를 본거지만, 확실한 것은 레데리의 상당히 많은 스토리 요소들이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입니다. 재밌는 점은 지금 현재 보고 있는 샘 패킨파 감독의 와일드 번치도 레데리에 많은 영향을 준거 같은데, 정작 영화가 지향하는 지향점은 둘이 정 반대라는게 포인트입니다. 와일드 번치도 조만간 다루도록 하죠.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