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스포일러 대량 함유입니다.
*엑박 버전 기준입니다.


1.

게임, 영화, 음악 등등 소위 대중문화에는 장르에는 그때마다 유행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히트코드' 가 존재합니다. 모든 대중문화가 히트코드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성공적인 작품들의 대부분은 히트코드라 할 수 있는 요소들이 충분히 존재하니까요. 그리고 히트코드는 시기에 따라서 변화합니다. 대중의 식성, 유행의 변화, 사회적인 관심사 등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서 변화하죠. 그런 의미에서 모던 워페어 이후의 콜 오브 듀티 시리즈는 참으로 미묘한 작품입니다. 모던 워페어가 싱글 게임에 있어서 연출, 그리고 게임이 나아가야할 방향성을 제시하였는데 반해서 모던 워페어 이후 근 5년이 다 되어감에도 불구하고 게임성은 물론 심지어 그래픽조차 변화하지 않고 있으니까요. 반면 모던 워페어 이후로 나온 수많은 게임들은 모던 워페어의 장점을 이어받으면서 동시에 다양성과 깊이에 있어서는 모던 워페어를 능가했죠.

하지만 우리가 한가지 간과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판매량으로 콜 오브 듀티 시리즈를 능가하는 작품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

일단 인정해야 할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모던 워페어 3는 모던 워페어 2에서 거의 변한 점이 없습니다. 싱글 길이는 짧고, 멀티는 온라인 게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대규모 업데이트 수준의 변화(벨런스 및 무장 추가 정도?)이며 몇몇 모드의 추가 및 벨런스를 무너뜨릴만한 요소의 삭제 정도의 선에서 머무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짜 이쯤되면 '성의'의 문제라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사실 '성의'의 문제로만 따지면 모던 워페어 3는 올해 최악의 게임 상을 줘도 할 말이 없습니다. 재작년에 본듯한 그래픽에서부터 제작년에 봤던 연출, 제작년에 본거 같은 스토리까지 내가 재작년에 이 게임을 한거 같은데 라는 느낌을 들게 만드는 게임이죠. 하다 못해 블랙옵스는 스킨하고 스토리 라인이라도 바꾸었지만, 모던 3는 모던 2의 스킨까지 배껴왔는가 싶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성의와 노력'의 문제는 별개로 넘겨두고, 게임의 재미 자체만 놓고 보면 어떨까요? 전작과 별다른 점이 없는 부분에 대해서 분노하는 사람들이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면, 모던 3는 '전개가 눈에 뻔히 보임에도 불구하고 재밌다'라는 것입니다. 물론 싱글 게임의 구조는 전작과 비슷합니다. 끝없이 밀려오는 적들을 상대로 사격 연습 좀 하다가 공중지원 부르고 문 부순 뒤에 슬로우 모션으로 문 뒤에 적들을 죽이고...반복되고 반복되고 반복될 뿐입니다. 하지만 모던 3는 적어도 그러한 반복되는 구조를 플래이어들에게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 엄청난 개판을 칩니다. 

모던 3 싱글은 게임 내내 계속 무언가를 때려부수거나 적들이 플래이어에게 달려드는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난장판 그 자체죠. 사실 이는 게이머에게 스크립트의 선형적인 진행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기 위한 고전적인 수법이죠. 마치 애니메이션에서 격렬한 전투씬을 표현할 때, 세부적인 디테일은 간략하게 표현되듯이 말입니다. 실제 모던 3의 경우에도 이러한 법칙이 그대로 적용되며, 이런 구태의연한 연출에 대해서 찬반양론이 어느 정도 존재하기는 하겠지만 적어도 슬렛지해머와 인피니티 워드(뭐, 반으로 쪼개지기는 했어도)는 그들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무엇이 플래이어의 이목을 사로잡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적어도 싱글 게임을 하는 동안, 플래이어는 정신없이 적을 죽이고, 앞으로 달리고, 연출을 감상하는, 최소한도 이상의 몰입을 할 수 있으니까요. 배트맨:아캄 시티나 언차티드 3와 같은 반열에 놓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평균 이상의 재미는 보장합니다.(이 뜻은 아무리 낮게 평가를 해도 배틀필드 3의 싱글보다는 재밌다는 이야기입니다)

3.

스토리 측면에서는 적어도 전작보다는 훨씬 좋습니다. 물론 이번 모던 3도 전작의 단점들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습니다. 이 인물 저 인물 왔다갔다 하면서 전쟁의 급박함을 보여주려 하다가 정작 케릭터에 대한 몰입도는 떨어지게 만들지 않나, 쓸데없이 자극적인 스토리 요소, 짧은 스토리 라인 등등은 사실 2편 보다 하등 나을 이유도 없죠. 하지만 적어도 3편이 2편보다 괜찮다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적어도 전작에 비해서는 각 사건마다의 개연성과 연관성은 훨씬 나아졌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전작에서 무슨 페이트/스테이 나이트의 랜서가 쓰는 게이볼그마냥 일어나는 인과관계의 역전(굴라크에 갔더니 프라이스 대위가 있었던게 아니라, 프라이스 대위가 있었기에 굴라크에 갔더라), 빈틈(미국인 한놈이 러시아 공항 테러에 끼어있었다고 CIA가 뒷공작을 한 테러로 규정, 거기에 별다른 외교적 규제 및 선전포고 없이 일주일도 안되서 전쟁을 일으켰다고?), 말도 안되는 반전(자기 부하 3만명 가까이 죽은것 때문에 분노한것은 이해가 되는데, 그렇다고 무려 장군이라는 사람이 러시아 극우주의자와 손잡고 자국에 전쟁을 일으킨다고?) 등 한 마디로 스토리 작가가 술쳐먹고 스토리 쓴거라고 믿고 싶을 정도로 엉망인 스토리였으니까요.

그러나 적어도 3편은 이런 치명적인 헛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전작처럼 마카로프-셰퍼드 처럼 악역의 급격한 변화 없이 오로지 '타도! 마카로프'라는 깃발 아래서 마카로프를 사냥하기 위한 각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전작보다 괜찮은 것이, 게임을 하면서 '뭐 그럴수도 있네'라고 덤덤하게 받아들이면서 게임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작이 '도대체 내가 뺴먹은 이야기가 뭐지'하면서 머리 싸매게 만드는 스토리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작은 그래도 장족의 발전입니다. 물론 블옵에서 시도한 새로운 맛은 전혀 없지만 말이죠(뭐 사실 블옵도 반전이 좀 그런 게임이기는 했지만....그래도 배틀필드 3의 싱글 스토리보다는 훨씬 괜찮습니다) 그렇지만 2편부터 플래이한 사람으로서 마지막에 마카로프 목을 매다는 장면은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 3편도 전작인 1편과 2편 마냥, 싱글 캠패인에 쓸데없이 자극적인 코드가 들어갔습니다. 1편에서는 핵에 피폭된 뒤에 점점 죽어가는 병사의 시점을, 2편에서는 민간인들을 집단 학살하는 모습을 집어넣었죠. 그리고 대망의 3편에서는 각 유럽을 대상으로 생화학태러를 하고 그 테러에 민간인, 그것도 여자아이가 휩쓸려서 죽는 것을 이벤트로 보여주죠. 사실 전작에 비해서 온건(?) 한것 아니냐라는 시선도 존재할 수 있는데, 문제는 헐리우드 영화나 블록버스터 역사를 통털어서 어린아이가 '직접적으로' 죽는 장면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겁니다(비슷한 사례로는 강아지에 대한 미국 영화의 무한한 사랑이 있죠) 뭐, 직접 테러리스트가 되어서 민간인에게 총질하는 것보다야 충격이 덜할 수도 있지만, 연출의 강도로 따졌을 때는 대단히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또 전쟁의 수단으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생화학태러를 일으킨다는 점도 연출의 수단으로서는 과격한 것이 아닌가 라는 의심도 듭니다.

4.

모던 3가 발매전에 논란이 되었던 것은 아마도 그래픽적인 문제가 대부분이었을 겁니다. 모던 워페어 및 콜 오브 듀티 시리즈가 전통적으로 퀘이크 2 엔진을 개조한 엔진을 쓰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사람마다 어떻게 받아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10년 동안 같은 그래픽 엔진을 쓴다는 것은 그래픽 개발로 돈을 날리느니 차라리 그 돈을 다른데 쓰겠다는 개발사의 확고한 의지가 보입니다. 그 덕분에 전통적으로 모던 워페어 1에서부터 모던 워페어 3(사이의 월드 엣 워, 블옵도 포함)까지 죄다 비슷해보이는 게임 그래픽을 자랑하고, 새로운 엔진 및 그래픽에 신경쓴 게임들에 비해 그래픽이 후달려보인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듯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상당히 도발적인 결론, 모던 워페어 3의 그래픽은 실제 보이는 것 보다 괜찮다, 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일단 게임 내에서 보여주는 텍스쳐는 상당히 떨어집니다. 텍스쳐의 질로만 따진다면 모던 2 이후로 2년동안 나온 게임들 중에 모던 3보다 나은 게임들이 수두룩하게 많으니까요. 하지만, 게임이 60 프레임으로 진행된다는 점, 그리고 연출이나 이펙트가 대단히 화려하다는 점 덕분에 게임의 포커스는 자연스럽게 텍스쳐에서 멀어지게 되죠. 아이러니 하게도, 게임 텍스쳐는 휙휙 지나가면서 본다면 상당히 괜찮은 수준입니다. 물론 현미경을 들이대고 보면은 상당히 안좋지만 게임 진행이 플래이어를 잠시도 쉬지 않게 만드니까요(어떻게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장에서 '이 머그잔좀 봐!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깍두기 같을 수 있지?'라든가 '우훗 샌드맨 엉덩이가 탱탱한걸?'이러고 있겠습니까?) 텍스쳐 하니까 말인데, 적어도 모던 3는 PS3버전 배X필X3 마냥 '날봐! 날보라고!'라고 미친놈 외치듯이 텍스처 팝인이 안일어나니까 텍스처가 그정도라도 봐줄만 하더군요.

5.

일단 기본적으로 모던 워페어 시리즈의 멀티 플래이가 재밌다는 점, 그리고 벨런스 패치 이외의 변화점이 없다는 것을 전제에 깔고 전작들과의 변화점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모던 3의 멀티플래이는 1편의 그것으로 회귀하였다고 합니다만, 제가 1편을 해보지 않은 관계로 확실하게 비교는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2편과 비교하자면 많은 부분에서 변화점이 존재하는데, 일단 2편에 비해서 맵은 작고 복잡합니다. 2편 맵이 대체로 큰 길+1층 건물 형태의 맵이었다면 이번 3편의 맵은 대부분 작은 골목+다층 건물의 형태입니다. 캠핑이나 스나이퍼에게 불리하고, 골목골목 마다 적이 튀어나올지 모르는(조금만 방심하면 뒤잡히는건 예삿일도 아닙니다) 구조입니다. 또한 전작에 비해서 총의 연사속도가 빨라졌기에 빨리 죽이고 빨리 죽는 게임 전개를 보입니다. 그렇기에 전체적으로 게임 끝날 때까지 원거리에서 일어나는 라이플 점사가 주된 게임 진행이었던 모던 2와 다르게 근접전에서 치고 받는 난사전이 상당히 유효합니다.

퍽이나 킬스트릭, 무기의 경우 전반적으로 2편에 비해서 밸런스가 잡힌 느낌. 2편의 경우에는 유탄 짤짤이 하기 좋은 맵구조 때문에 무한 유탄질이라는 원 맨 아미 사기 조합 및 무한 달리기+근접 공격 사거리 증가를 악용한 닌자 플래이, 20미터 사거리 내에 있는 모든 적들을 작살내버리는 무적의 주지사님 샷건 아킴보, 라이플보다 좋은 UMP 등으로 악명 높았지만 적어도 이번작에서는 그정도로 사기성을 보여주는 무기나 퍽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작에 비해서 무기를 선택할 수 있는 다양성이나 커스터마이징의 가능성은 좋아진 편인 것을 감안한다면 2편보다는 훨씬 나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6. 

논란의 여지가 충분히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일단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던 워페어 3는 상당히 재밌는 게임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변화가 없다는 점은 성의가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전작부터 있었던 단점들은 대부분 존재하구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던 워페어 3는 적어도 여태까지 자신이 잘하던 것을 잘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치 싱글은 모던 3 데모 처럼 만들어놓고 플삼판은 그래픽 팝업이 일어나서 사람 눈을 썩게 만드는 배X필X 3같은 게임하고 다르게 말이죠. 사실,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게임 있다면 변하지 않는 것 보다는 거짓말+과대포장+재미없는 게임 일 것입니다. 적어도 모던 3는 저 셋중에는 들어가지 않네요.

물론 기대감 0의 상태에서 한건 미묘한 이야기지만 넘어가도록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