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글 본문하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짤방)

2002년, 세월이 흐르며 특차 2과의 말썽쟁이들도 이리 저리 흩어져 나가고, 고토와 시노부 정도가 남아서 2과를 지키고 있었다. 바빌론 프로젝트도 거의 마무리를 향해 달려가는 시점에서 레이버 범죄도 많이 감소해 그럭저럭 평온하고 무난한 일상이 이어지던 중.. 정체불명의 전투기가 미사일을 이용해 도쿄 베이브릿지를 공격하는 사건이 터지고, 그것은 연달아 도쿄의 교량들과 주요 시설이 공격헬기의 습격을 받는 일대 테러 사건으로 번진다. 그 와중에 의심을 받던 자위대는 계엄 선포에 의해 전국을 장악하며 경찰과 대립각을 날카롭게 세우는 등 정국은 엉망이 된다. 사건을 한 걸음씩 조사해나가던 고토와 시노부는 '츠게 유키히로'란 남자가 그 배후에 있음을 알게 되는데...


페트레이버 2기 극장판은 페트레이버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이질적인(옴니버스 형식의 괴작 폐기물 13을 제외하고) 작품입니다. 우선 2기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특차 2과의 인물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자신의 갈 길을 걷고 있으며, 레이버라는 요소는 거의 등장하지 않죠. 즉, 기존의 패트레이버 시리즈라기 보다는 다른 작품이라는 느낌조차 들 정도니까요. 오히려 이 때부터 오시이 마모루 감독 특유의 무거운 철학적 정치적 주제들이 드러나는 전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형식뿐인 평화, 일상에 잠복한 위협 등등의 요소가 어떻게 밖으로 드러나는가, 그리고 우리는 얼마나 가식적인 평화에 사로잡혀서 세계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인가 등에 대한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진지한 고찰이 묻어나는 작품이죠.

패트레이버 2기 극장판은 감독과 감독이 속한 세대에 대한 고민에서 부터 출발합니다. 2차세계대전 이후 태어난 일본은 미소 냉전에 의해 미국의 이데올로기적 최종 방어선(1950년대 미국이 발표한 이데올로기적 최종 방어선인 에치슨 라인만 보더라도 한국은 포함되지 않고, 일본까지만 포함이 되어있죠)으로 정해졌죠. 사실 일본이란 나라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당시 공산주의를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방파제와 같은 역할이었고, 냉전 체제가 붕괴한 지금은 미국의 최우방으로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지키기 위한 최우방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즉, 일본이란 나라 자체는 세계 정세, 특히 과거에는 미소 관계, 요즘은 중미 관계에 따라서 흔들리는 아슬아슬한 평화를 유지하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일본은, 일본 사회와 국민들은 스스로 그러한 아슬아슬한 평화 관계를 자각하고 있을까요?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고민은 거기서 출발합니다. 일본은 전쟁 이후 한번도 내전이나 극심한 정치적, 경제적 갈등을 겪어 본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일본이란 국가의 2차 세계대전 이후의 현대사는 메이지 유신 이후의 근대 일본 제국에서 약간 변화점을 준 것에 불과하죠. 그렇기에 일본인들은 과거에 대해서(메이지 유신, 전통문화, 극우, 심지어는 일제 시대 및 그 시대의 전쟁에 대해) 향수를 갖고, 이것이 대중문화의 형식으로 끊임없이 재생산됩니다. 즉, 과거에 대한 미화된 기억으로 현재의 미국과 일본, 그리고 동북아에서의 파워 게임 내의 일본의 위태로운 위치에 대해서 상당히 피상적이고 추상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평화는 능동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제도와 틀에 갇혀서 양식되고 사육되게 됩니다. 즉, 일본이란 나라가 처한 국제 정치적 상황에 대해서 추상적인 신념(우리나라는 전쟁과 무관하며, 평화는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에 근거하여 평화와 국가 수호라는 주요 명제를 명목화, 제도화 시키고, 그 결과 제도화된 틀 내에서 일어나는 문제들-관료주의와 늦장대응, 부서 간의 파워 게임-이 생겨나게 됩니다.

작품은 이러한 문제 상황에서 출발합니다. 작품의 도입부, 츠게가 속한 레이버 소대가 복잡한 지휘계통 및 조약에 의해서 전투에서 반격도 못하고 전멸하는 이 장면은 작품의 주제를 핵심적으로 지적하는 부분입니다. 여기서부터 츠게의 분노가 시작되죠. 그것은 형식으로 밖에 존재하지 않는 평화와 세계에 대한 분노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단 한발의 폭탄과 허세만으로 일본이란 나라가 누리는 평화를 박살내어버릴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일본이란 나라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 그리고 일본이란 나라가 진정으로 위급한 상황에서 무능력한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죠.

이러한 츠게의 계획에 이용된 것은 미국의 극비 계획입니다. 일본에 위급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일본의 정권을 무너뜨리고 미국이 어떤식으로 개입할 여지를 마련하는가에 대한 전쟁 시나리오였죠. 상당히 과격한 소재이기는 합니다만, 결과적으로 미국이란 나라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일본의 정세를 신랄하게 꼬집는 대목입니다. 즉, 오시이 마모루가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은 일본이 누리고 있는 평화란 미국의 암묵적인 동의와 국가간의 위태로운 균형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거짓뿐인 평화이며, 일본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관료주의와 제도로 이를 재생산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츠게의 계획에 일본은 완전히 아수라장이 됩니다. 처음 베이브릿지 폭파 이후, 자위대와 경찰은 범인 색출 및 치안 유지라는 본연의 의무를 망각하고 서로의 관할권 다툼 및 파워 게임만 일으키다가 결국은 도쿄를 두고 자위대가 도쿄를 점거하고 계엄령을 선포하는 등의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이 사건의 본질인 츠게에게 접근하지 못하죠. 아니, 정확하게는 이러한 혼선 속에서 츠게라는 본질은 망각됩니다.

여기서부터 특차 2과와 고토 경부보의 활약이 시작됩니다. 그는 이러한 혼란 속에서 진실을 보았고, 그것을 끝까지 추격하여 종국에는 사건을 해결합니다. 하지만, 그가 문제 상황을 똑바로 파악하고 이를 설파하려 했을 때, 그 어느 누구도 이를 듣지 않았죠. 결국 그는 그의 독단으로 특차 2과 前 소대원들을 모아서 그들만의 전쟁을 벌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그 어느 누구도 보지 않는 진실을 위한 제도 밖에서의 전쟁을 말이죠. 그리고 특차 2과는 승리하지만, 그들의 이러한 노력은 단지 제도 밖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그들은 그들이 받아야 하는 합당한 대우를 못받고 조용히 어둠속으로 사라집니다.

재밌는 점은 츠게나 특차 2과 모두 공통적으로 진실을 꿰뚫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이전 페트레이버들에서 드러나는 특차 2과의 모습, 제도 밖에서 제도의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적인 모습을 드러내죠. 하지만 츠게는 제도 밖에서 제도의 문제점을 보았고 이를 무너뜨려서 진실을 알리려 하지만, 특차 2과는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밖으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을 찬밥 대우하는 제도 그 자체를 지키려 노력하죠. 이는 상당히 역설적인 구도입니다. 제도에서 쫒겨난 자들이 제도를 지키려 드는 것이니까요. 이에 대해서 고토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것이 설령 거짓된 평화라도, 우리의 의무는 그것을 지키는 것이기에 지켜야 한다, 라고.

결국 츠게와 특차 2과의 싸움은 세상의 부정에 대한 순수한 분노와 세상을 지키려는 순수한 신념과의 싸움입니다. 평화의 알고리즘 바깥에서 일어난 아웃사이더들의 싸움. 그것이 바로 페트레이버 2기 극장판을 관통하는 주제인 것입니다.

표현이나 주제, 분위기, 작화 등에서 페트레이버 2기 극장판은 정말로 훌륭한 작품입니다. 80년대 말, 90년대 초의 일본 거품 경제의 끝자락에서 나온 대단히 과잉적인(긍정적, 부정적인 의미 양측 다) 작품이죠. 하지만 페트레이버 시리즈 연장선상에서 과연 이 작품이 좋은 작품인가 라는 질문에 저는 부정적으로 답하겠습니다. 2기는 확실히 어렵기는 하지만, 좋은 작품입니다. 그러나 좋은 작품이라는 평가와는 별개로 2기는 시리즈를 관통하는 정체성을 다 집어 던져버렸습니다. 레이버, 일상적인 소소함, 특이한 케릭터 등등의 페트레이버 시리즈의 좋은 미덕들은 죄다 갖다 버리고, 오로지 오시이 마모루에 의한, 오시이 마모루를 위한, 오시이 마모루의 작품이 탄생한 것이죠. 만약 제가 이 작품을 극장에서 어떤 정보도 없이 처음 보았다면, 시리즈의 팬으로서 대단히 분개하였을 것입니다. 1기 극장판 역시 상당히 무거운 작품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 저건 페트레이버구나'라는 아이덴티티는 존재하였죠. 하지만 2기는 케릭터와 배경만 빌은 아예 다른 작품이라 판단하는 것이 좋습니다.

결론적으로, 페트레이버 2기 극장판은 역설적이게도 '페트레이버'라는 제목을 때고 보아야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작품입니다. 객관적인 완성도와 감독이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 표현력 역시 훌륭했지만 문제는 그러한 표현의 방식이 시리즈 팬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상당히 충격적이면서 불쾌할 수 있는(?) 요소가 많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트레이버는 오시이 마모루라는 감독이 공각기동대 전에 어떤식으로 변화하기 시작하였는가를 볼 수 있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며, 작품 자체로도 한번쯤 고민을 할 수 있게 만드는 훌륭한 작품입니다.



덧.이제 폐기물 13이 남아있는데, 이건 나중에 짧게 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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