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스포일러 포함)

1.

이 글은 사실 리뷰라기 보다는 에바:파에 대한 감상글입니다. 사실 제가 감상과 리뷰의 개념이 혼재하여서 블로그에 포스팅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대체로 감상은 아직 완결되지 아니한 작품에 대해서, 리뷰는 완결된 작품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에바:파를 보면서 느낀 것은 아직 가이낙스가 완성된 형태의 새로운 에반게리온은 전체 작품을 보아야 알 수 있겠다는 점이었습니다. 아마 그때 즘이면 제가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나 감상의 포인트로 잡았던 부분, 예상 및 전반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겠지만, 현재는 한 작품을 4편의 작품으로 쪼개놓았다는 느낌이 강하기에 뭐라 평가하기가 미묘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이번 작품이 전체 작품을 놓고 보았을때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는 점이죠.

2.

 기본적으로 에반게리온 파는 전작인 서에 비해서 엄청난 변화점을 갖고 있습니다. 우선 전작이 기본적으로 원 TV판에서 스토리에 약간 약간식의 변화를 준 정도의 미묘한-사실 비주얼적인 측면이나 설정적인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변화점이 존재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의 변화점에 비해서는 비교적 온순한 편입니다. 일단 사도가 붙은 에바를 처리하는 장면이나 에바 5호기와 신 파일럿, 느부갓네살의 열쇠, 중간의 레이가 신지와 겐도를 이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 등이 큰 차이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그 정점에는 마지막 클라이맥스의 지오프론트 교전이 존재하는데, 사실상 그 자리에서 "끝!"이라고 외쳐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를 몰아놓고서는 하늘에서 카오루가 내려오면서 의미심장한 대사를 날리고는 서드 임펙트를 막는 장면은 충분히 실시간으로 보는 사람들을 벙찌게 만들정도로 충격적인 부분이었습니다.

카오루의 등장 포인트나 마지막 지오프론트에서의 결전 등은 TV원작의 스토리 노선을 완전히 벗어난 부분이었죠. 어찌보면, 신 극장판이 나온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팬들이 기대한 것은 이게 아니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3.

이러한 극장판 파의 급격한 변화점의 이유를 찾기 위해서는 먼저 원작이 어떤 성격을 지니는지, 그리고 원작과 파의 차이점을 찾아내고 이를 토대로 파가 어떤 작품을 지향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단, 이제는 전설이 된 에반게리온 원작 TV판의 특징을 살펴보도록 하죠. 우리가 이미 익히 아는데로 에반게리온 시리즈는 이제 애니메이션 역사에서 빠뜨릴 수 없는 작품입니다. 뛰어난 심리묘사, 뒤틀린 슈퍼 로봇물의 클리셰, 모호하고도 복잡한 상징체계 등등...에바의 특징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엄청나게 많습니다만, 이들을 아우르는 가장 중요한 코드는 주인공 이카리 신지라는 소년의 성장입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신지가 에바 초호기에 타면서 생기는 다양한 사건과 인간관계, 좌절, 희망, 절망, 극복 등의 과정을 통해 한 사람으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높은 완성도로 묘사하였고, 이는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신지의 분노가 마치 나의 분노처럼 느껴졌었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큰 감응을 이끌어냅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이야기 구조에 있어서 독특한 점은 바로 이야기의 네러티브가 총 두개라는 점입니다. 하나는 신지와 아스카, 레이, 그리고 그 아이들을 둘러싼 환경과 사건이고, 또다른 하나는 아이들에 대한 제레, 겐도, 네르프 등의 어른들의 완성된 음모입니다. 아이들은 행복해지고 싶지만, 어른들의 음모와 짜여진 이야기에 부딪히고 좌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큰 음모에 대해서 순응하거나(레이), 그 속에서 행복을 찾거나(아스카), 혹은 방황하며 반항하는(신지)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아이들은 조금씩 어른이 되갑니다. 이러한 정해진 이야기, 답답한 세계 속에서 벗어나려는 아이들의 노력과 좌절을 뛰어난 심리묘사를 통해 드러내었고, 그리고 전반적으로 암울하면서 정적인 분위기를 지향함으로써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같이 그 케릭터의 고뇌를 느끼게 만듭니다. 또한 서드 임펙트(낡은 생명체, 즉 구세대, 어른은 멸망하고 새로운 아이들의 세계가 열린다), 어머니와 오이디푸스 콤플랙스(에바 초호기와 겐도, 그리고 신지), 인공양수와 인공자궁(LCL과 엔트리 플러그), 에반게리온(Evangelion, 복음을 전도하는 자, 어떤 복음을?), 사도, 사해 문서, 리리스, 아담 등의 기독교 상징체제를 이야기 네러티브에 유기적으로 잘 활용하였고, 결과적으로 작품에 깊이가 있어보이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에반게리온 TV판 자체의 결말은 예산 부족으로 인해 상당히 난감(?)하면서 성급한 결말을 내렸습니다. 이에 대해 가이낙스는 에바의 후폭풍을 이용해서 훗날 진정한 결말이라 주장하면서 만든 등장한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을 내놓게 됩니다. 화려한 비주얼, 나름대로의 납득이 될만한 결말을 내리는데 성공을 하나, 역시 대부분의 이야기의 복선은 회수되지 못하였고, 오히려 '무슨 이야기인지 도통 모르겠다'라는 팬들의 원성 및 비난을 사게 되었죠. 그리고 이제 시간은 흘러 新 신세기 에반게리온 극장판이 등장하게 됩니다.

4.

破는 이러한 기존의 에반게리온의 이야기를 뒤트는 결정적인 터닝포인트입니다. 그 중 가장 특이하다 할 수 있는 점은 바로 기존의 두 개의 네러티브-어른과 아이의 이야기-의 관계가 변화하게 되죠. 즉, 기존의 에반게리온에서는 '어른의 음모에 의해서 행복해질 수 없는 아이들'이라는 종속된 이야기 구조 형태가 종속되었지만 더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는 주인공들이라 할 수 있는 레이, 아스카, 그리고-특히-신지의 행동과 심리묘사를 통해 드러납니다. 레이가 신지와 겐도를 이어주기 위해서 식사 준비를 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던가, 아스카가 에바 이외의 타인에게 신경을 쓰는 장면이 나오는 등 케릭터들의 성격이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이 두 케릭터들이 기존의 어른들의 시스템 내에서 종속되거나 행복을 찾는 것이 아닌 자신의 주변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고, 누군가 행복해지길 기원한다는 점은 전작에 비해 큰 변화입니다. 그렇기에 작품은 과거의 감정의 모호성, 정적인 구도, 사이코 드라마 등의 요소가 아닌 적극적인 대처와 감정 교류를 보여주어서 오히려 예전의 작품보다 시원시원 해진 느낌을 주죠.

특히 이는 신지의 케릭터 변화는 위의 두 케릭터 보다 더 극적이고, 에바 파의 본질을 잘 드러내는 부분입니다. 일단 기존의 TV판에 비해서 케릭터가 상당히 적극적으로 자기 감정을 표출합니다. 또한 분노의 표현 강도 또한 상당히 올라가는데, 원작에서 출연비중이 적었던 토우지가 아닌 중요 케릭터라 할 수 있는 아스카가 3호기 테스트 파일럿이 되고 큰 부상을 입게 되면서 관객에게 큰 충격을 줄 뿐만 아니라 신지가 표현하는 분노를 원작에 비해 역동적(아버지 같은거 죽어버려! 라던가...)으로 표현하여 신지가 느꼈던 충격과 공포를 관객들에게 납득시킵니다. 특히 극중 클라이맥스 부분인 제르엘-통칭, 휴지사도-과 초호기의 싸움에서는 오히려 신지가 '모두'를 구하는 것이 아닌 '레이'라는 특정한 인물을 구하기 위해서 초호기를 타는 점-미사토의 표현대로, "모두를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행복을 위해 에바에 타고 싸우는 것"-이나 제르엘과의 전투에서 밀리자 방어기제로서 초호기가 폭주하는 것-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과보호-이 아닌 스스로의 '의지'로 플러그 심도를 높여서 레이를 구하는 모습은 신지가 이미 원작에서의 수동적인 모습이 아닌 적극적이며 반항적인 케릭터로 변모했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결국 에바 파에서 드러나는 가장 큰 특징은, 어른들이 준비한 각본-제레의 인류보완계획이나 겐도의 계획-이 아닌 자신들의 행복을 찾아서 자립하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전면에 등장한다는 겁니다. 그것은 에바를 통해서 묶여졌지만, 에바가 주된 것이 아닌 에바 바깥에서 찾게 되고, 그리고 거기서 에바는 아이들의 분신이자 도구가 됩니다. 그러한 변화 속에서 신지는 자신의 의지로 서서 행복을 찾아내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어른들의 각본을 깨뜨리고 서드 임펙트, 즉 신세대의 강림을 초래합니다. 하지만, 파는 그러한 결말이 아닌 기막힌 반전, 갑작스러운 카오루의 등장과 기존 에반게리온 스토리의 붕괴를 불러 일으키고 이야기를 새로운 국면으로 이끕니다.

5.

에반게리온 파는 신 극장판의 방향성을 보여준 작품입니다. 그리고 기존의 에반게리온과 다른 이야기를 선택함으로서 기존의 작품을 떠나 새로운 작품으로 나가게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이야기의 구도, 다른 디테일과 세계관, 하지만 거대한 틀에서는 하나의 작품이라는 이 기묘한 상황을 과연 Q나 결에서 어떤 식으로 마무리 지을 것인가, 그리고 과연 이번에는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결말을 낼 수 있을 것인가 라는 문제가 남아있습니다. 물론, 이미 파에서 충분히 납득할만한 이야기전환을 보여주었기에 저는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6.

결론적으로 이번 작품은 신 극장판 다운 기존 작품에 대한 재해석 및 이야기 구조의 변화 등 다양한 변화를 시도한 작품이며, 기본적으로 조금 미묘한 전작에 비해서 더 극장판 스러워진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기존의 에반게리온을 재밌게 보신 분이라면 신 극장판 역시 기대할만한 물건이 된다는 것을 여지없이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작품으로서의 신 극장판에 대한 판단은 좀더 유보하고 조심스럽게 지켜봐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덧.분명히....페트레이버 2기 극장판 리뷰가 순서상 먼저 아니었나?

덧.다시보면서 느낀것이지만....신지가 지극히 정상적으로 보이더군요. 사실 어렸을 때, 아버지란 인간이 아들을 갔다 버리다시피하고, 겨우 거기서 벗어나서 멀쩡하게 중학교 다니는 놈을 갑자기 끌고 와서는 로봇인지 인간인지 햇갈리는 물건에 태우고 '니가 안타면 세계는 좆ㅋ망ㅋ'이라고 협박하면 부처나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에야 다들 찌질거릴 수 밖에 없을거 같습니다. 게다가 자기손으로 친구를 죽일뻔한 경험까지 하면 '아버지 같은거 죽어버려!'라고 외칠 수도....하여간 요즘 보면서 느낀점은 신지가 찌질한게 아니라 주위 상황이 존나 캐막장이구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