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애니에 대한 잡생각

*편의상 존칭은 생략하겠습니다.

 잘 나가는 모든 작가는 둘 중 하나다. 사실보다 더한 사실을 이야기 하는 작가, 혹은 뻥 보다 더 심한 뻥을 치는 작가. 물론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모래알 한알 속에서 세계를 본다" 말 처럼, 뻥 속에서 더한 진실을 찾을 수도 있고, 진실 속에서 더한 진실을 찾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는 둘 다 같은 부류의 작가가 아닐까 라는 생각도 언뜻 들지만, 여기서는 그게 핵심이 아니니 일단 패스.

 J.J 에이브람스 라는 드라마 PD(혹은 영화 감독)는 어느쪽에 속하는가 라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여지 없이 후자의 전형적인 작가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것도 그는 아주 중증의 후자다. 거짓말쟁이의 제왕, 모든 뻥들의 아버지, 떡밥과 황당함과 구라 라는 성 삼위일체의 화신. '그렇기에', 그의 작품들은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 미드 열풍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그의 데뷔작 엘리아스, 명실상부한 미드의 히트작 로스트, 전세계 네티즌을 상대로 초거대 떡밥을 던진 클로버필드, 스타트랙 세계관을 아예 리셋시킨 스타트랙:더 비기닝, 그리고 토끼발 미션 임파서블 3, 구라 과학 수사물 프린지까지, 죄다 평균 이상의 성공을 거두고 있는 작품들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언뜻 보기에 상당히 황당하고 막장적인 내용의 연속이다. 엘리아스의 1화의 내용을 보자.

"한 여대생이 있었는데, 그녀는 CIA 위장 지부 SD-6에서 일하는 CIA 스파이였다. 그녀가 자신이 스파이란 사실을 약혼자에게 밝히자, 약혼자는 그대로 CIA 손에 암살당한다. 그녀가 좌절하고 있는 동안, 그녀의 아버지는 사실 그녀가 일하는 SD-6는 미국의 적이었으며 자신은 바로 자신이 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위해서 일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길로 CIA에 자수하여 CIA와 SD-6 사이의 이중 스파이가 된다."

 이게 약 1시간 가량에 들어간 내용이다. 왠만한 드라마에서는 대략 한 시즌 안에 일어나는 일을 단 1화에 압축시킨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소드마스터 야마토가 생각나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아직 전체 드라마에 비추어 보았을 때 아주 사소한 서막 에 불과하다. 실제로, 엘리아스는 저런 내용으로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즌 5까지 있다.

 실상, 그의 이야기는 어떤 의미에서는 한국의 막장 드라마(소위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가 연상된다. 매번 사람의 상식을 뛰어넘는 전개로 사람들의 욕을 들어먹게 하지만, 뒷내용이 궁금해서 끊임없이 보게 만드는 이야기. 하지만, 만약 그도 상식을 뛰어넘는 이야기를 계속 전개한다면 보는 사람들에게 '막장'이라는 비판을 듣지 않을까? 물론, 드라마 외부에서 전체 스토리를 놓고 보았을 때는 이런 병맛이 따로 없다. 1로 시작한 작품이 10000의 내용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마 내부에서는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못한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지독하고 악질적인 뻥쟁이 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뻥을 칠 때, 뻥을 치는 자신에게 자신감을 잃고 뻥의 내용에 있어 어떤 제약을 가한다. 그래서 어떤 작품들은 좋은 소재와 이야기로 시작을 함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흐트러지거나 어리석게 안전한 결말을 내려한다. 하지만, J.J 에이브람스는 다르다. 그는 근본적으로 자신의 뻥과 이야기에 대한 지독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그것이 사이비 과학의 출현이 사실 평행 우주간의 전쟁의 서막이었다던가, 무인도에 비행기가 떨어져서 서로 상관없는 인간들이 모인 것은 사실 거대한 무언가의 의지였다던가 등 무엇이든 간에 그는 거침없이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리고 감상자들은 이에 껌뻑 속아넘어간다. 왜냐면, 이 남자가 너무나 뻥 잘치고 있기에 이것이 허무맹랑한 뻥이란 사실을 망각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의 이야기가 정말로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니다. 이는 그의 작품인 프린지에서 이야기하였듯이 "뻥은 진실에 기반하고 있을 때, 최고의 뻥이 될 수 있다" 라는 명제로 설명된다. 즉, 그의 작품은 기본 이상은 충분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작품은 전반적으로 명확한 이야기 구조를 가진다. 작품에 등장하는 개성있고 탄탄한 케릭터들까지 등장시켜 이야기 구조를 완성하고, 드라마에 잔재미를 부여하는데 성공한다. 특히 그는 장면의 연출에 있어서 놀라운 솜씨를 발휘하는데, 컷과 컷의 절묘한 연결, 적절한 암시장면, 보는 사람을 순간적으로 움찔하게 만드는 장면 등등 정확히 그 장면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나 느낌을 확실하게 전달한다.

 결론적으로, J.J. 에이브럼스는 뭘 하든 간에 기본 이상은 하는 감독이다. 그의 작품들은 황당한 스토리와 설정이라는 측면에서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연상되기도 한다. 실제로도 그런 느낌이 어느정도 들어서 이 감독의 작품을 찾아 보았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J.J 에이브럼스의 작품들은 요즘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느낄 수 없었던 "기본은 하고 뻥을 쳐라"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사실 요즘 작품들은 코드 나 소재에 집착해서 기본을 잊어버린 작품들이 많다고 느낀다. 비단, 일본 애니메이션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하여간, J.J. 에이브럼스가 만든 왠만한 작품들은 봐서 손해볼 건 없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재미' 하나는 보장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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